단순한 일일수록 매뉴얼은 자세해야 한다 — 원격 인력에 일을 넘기기 전에

「이거 배경만 따 주시면 돼요.」

맡기는 일이 단순할수록 이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복잡한 업무면 넘기면서 어떻게든 설명을 하게 되는데, 단순 반복 업무는 설명할 거리가 없다고 느껴진다. 일 자체를 놓고 보면 단순한 게 맞기도 하다.

몽골 인력을 한국 사업자에게 붙이는 게 내 일이다. 지금까지 붙인 게 2,700건쯤 된다. 그러다 보니 같은 장면을 여러 번 보게 되는데, 매뉴얼을 만들어 온 쪽과 그냥 시작한 쪽의 차이가 가장 크게 벌어지는 자리가 하필 거기다.

복잡한 업무가 아니라 단순 반복 업무에서 갈린다.

처음에는 이게 거꾸로 보였다. 지금은 그럴 만하다고 본다. 매뉴얼은 일이 복잡해서 필요한 게 아니라 일이 반복되기 때문에 필요하다.

설명이 필요 없어 보이는 자리

복잡한 일을 넘길 때는 말이 길어지기 마련이다. 절차를 짚고, 주의할 것을 덧붙이고, 막히면 연락하라는 말까지 붙인다. 설명 없이 넘기면 안 될 것 같아서다.

단순한 일에서는 그 과정이 통째로 생략된다. 「배경 따 주세요」 한 줄로 뜻이 전달되고, 실제로도 전달된다. 무엇을 하는 일인지는 상대도 안다. 다만 어떻게 하는지는 같이 가지 않았는데, 넘긴 쪽은 넘겼다고 생각한다.

설명을 안 한 게 아니라 설명할 것이 있다는 생각 자체가 안 든 것이라 빠졌다는 감각도 없는 듯하다. 그래서 매뉴얼이 가장 필요한 일에 매뉴얼이 가장 없다.

사소해서 안 묻는다

「단순 반복」이라는 말은 판단할 게 없다는 뜻으로 읽히기 쉽다. 실제로는 반대다. 판단이 작아졌을 뿐 개수는 오히려 늘어난다.

누끼라는 업무 이름 하나 안에 바닥 그림자 처리·색 보정 범위·머리카락 경계·저장 형식·원본 보관 같은 판단이 들어 있고, 넘어가는 것은 이름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도식

사진 한 장에서 배경을 따낸다고 해 보자. 제품만 남기고 뒤를 지우는 일이다. 그런데 바닥에 제품 그림자가 깔려 있다. 이걸 같이 지울지 남길지를 정해야 한다.

맡기는 쪽은 남겨 왔다. 그림자까지 지우면 제품이 배경에 붕 뜬 것처럼 보여서 상세페이지에 얹었을 때 싸구려 같아진다. 몇 번 해 보고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얘기를 적어 둔 적은 없다. 혼자 하는 동안에는 적어 둘 이유가 없었다.

받는 쪽은 지운다. 배경을 지워 달라고 했으니 바닥에 깔린 것도 배경이다. 게다가 깨끗하게 떨어진 컷이 더 잘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어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자리가 사진 한 장에 몇 개씩 나온다. 색을 원본대로 둘지 화사하게 보정할지, 머리카락은 어디까지 살릴지, 투명 PNG로 낼지 흰 배경으로 낼지. 다 물으면 하루에 서른 번이다. 묻는 쪽도 답하는 쪽도 그건 못 한다.

정하는 것 자체는 성실하게 한다. 다만 그 판단이 맡긴 사람 것과 같을 이유는 없다.

한 장이 아니라 천 장이 된다

여기까지는 사진 한 장짜리 얘기다. 여기에 반복이 얹히면 성격이 달라진다.

같은 기준이 판단이 큰 일에서는 하루 몇 건에만 적용되고, 단순 반복 업무에서는 수백 건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을 점 격자로 비교한 도식

지우기로 한 그 결정은 그날 작업한 전부에 똑같이 들어간다. 다음 날도 같은 방식으로 나가고 그 다음 날도 그렇다. 일주일 뒤에 발견하면 천 장이 그림자 없이 떨어져 있다.

판단이 큰 일이었다면 이렇게까지 가지 않는다. 제안서를 쓰거나 계약을 검토하는 일은 하루에 몇 건뿐이라 어긋나도 몇 건에서 걸리고, 건당 시간이 길어서 중간에 눈에 띌 여지도 있다.

단순 반복 업무에는 그 제동이 없다. 건당 시간이 짧으니 금방 쌓이고, 쌓이는 동안에는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기 마련이다.

그리고 지운 그림자는 되살릴 수가 없다. 고치려면 원본에서 처음부터 다시 따야 한다. 천 장을 고치는 일이 천 장을 새로 하는 일 그 자체가 된다.

적어 두지 않으면 피드백이 안 된다

매뉴얼이 없을 때 생기는 일이 하나 더 있다. 고쳐 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기준이 문서로 없으면 남는 건 감각뿐이라 「좀 다른데요」나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정도로 나가게 된다. 그러면 받는 쪽에서는 고칠 방향이 안 잡히기 마련이다. 무엇이 어떻게 달랐는지를 모르니 다음 건에서 또 어긋날 수도 있다.

적어 둔 것이 있으면 이 대화가 짧아진다. 「1번이요. 바닥 그림자는 남기기로 했는데 지워져 있어요.」 이렇게 가리키면 끝이고, 그 규칙에 없던 케이스였다면 그 자리에서 한 줄 추가하면 된다.

매뉴얼은 일을 시킬 때만 쓰는 게 아니라 고쳐 달라고 할 때도 쓴다.

자세할수록 좋다

여기까지 오면 어디까지 적어야 하나 싶어진다. 답은 간단하다. 자세할수록 좋다.

대충 적은 문서는 딱 그만큼만 막아 주는 것 같다. 적어 둔 만큼의 어긋남을 막고, 안 적은 자리는 그대로 남는다. 그리고 안 적은 자리 하나가 앞에서 본 대로 천 장에 간다.

「단순한 일이니 이 정도면 되겠지」가 제일 비싸게 먹히는 판단인 것 같다. 단순 반복 업무는 적어 둔 만큼 돌아오는 편이다.

문장은 이런 모양이면 된다.

  • 바닥 그림자는 지우지 말고 남긴다. 지우면 제품이 배경에 떠 보인다
  • 투명 PNG로 저장한다. 오픈마켓에 바로 올릴 것만 흰 배경 JPG로 따로 낸다
  • 색은 원본 그대로 둔다. 화사하게 보정하면 실물과 달라져서 반품이 는다
  • 머리카락·털은 한 올씩 따지 말고 덩어리로 정리한다
  • 원본 파일은 지우지 말고 같은 폴더에 남긴다. 다시 따야 할 때가 온다

읽어 보면 대단한 내용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줄은 말로 해 본 적이 없는 것들이라 적지 않으면 넘어가지 않는다. 떠오르는 대로 다 적는 쪽이 맞다.

누끼가 아니라 자기 업무에서 이런 자리를 찾아야 한다면, 기준이 하나 있다. 「그때그때 달라요」라고 말하게 되는 지점을 적으면 된다. 그 말이 나온다는 건 기준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기준이 있는데 조건에 따라 갈린다는 뜻이다. 무엇에 따라 갈리는지를 같이 적으면 그게 한 줄이 된다.

다만 한 번에 완성할 필요는 없다. 처음에 생각나는 것을 적고, 질문이 올 때마다 한 줄씩 붙인다.

실제로 그렇게 간다. 처음에는 메신저로 그때그때 말로만 설명하던 쪽도, 몇 달 지나면 문서로 정리해서 넘기기 시작한다. 권해서 그렇게 된 경우보다 알아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같은 설명을 반복하다 보면 적어 두는 쪽이 빠르다는 걸 알게 되는 것 같다.

매칭 초기에 이 문서를 같이 준비하자고 권하는 것도 그래서다. 어차피 갈 곳이라면 앞에서 가는 편이 낫다.

지금까지 받아 본 것 중 제일 자세했던 건 영상 자막 편집을 맡긴 쪽의 것이었다. 맨 앞에 채널이 어떤 성격인지가 적혀 있었다. 말투를 어디까지 다듬어도 되는지, 어떤 표현은 그대로 둬야 하는지가 거기서 갈린다. 그 다음이 쓰는 프로그램의 기본 사용법이었고, 자막을 고칠 때 어디를 건드리고 어디는 두는지가 뒤에 붙었다. 통째로 PPT 한 벌이었다.

프로그램 사용법까지 적을 필요가 있나 싶은 대목이다. 보통은 그쯤은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넘긴다. 그런데 그 판단이 맞았다.

적는 게 막히면 AI에 시킨다

자세히 적으라는 말은 예전에는 현실성이 없었다. 적고 있을 시간이면 내가 하고 만다. 그래서 다들 대충 넘기고 시작했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적는 게 막히는 이유는 앞에 나온 것과 같다. 기준이 몸에 붙어 있어서 막상 글로 옮기려고 하면 무엇을 적어야 할지가 안 떠오른다. 여기가 요즘 AI가 잘 푸는 자리다. 「매뉴얼 좀 써 줘」라고 시키는 게 아니라 순서를 거꾸로 돌리는 방식이다.

머릿속 기준을 글로 옮기려다 막히는 순서와, 이미 해 둔 결과물에서 AI가 규칙을 뽑고 사람이 고쳐 매뉴얼을 만드는 순서를 비교한 도식

이미 해 놓은 결과물을 먼저 보여 준다. 지난달에 작업한 누끼 서른 장이든 편집해 둔 영상 몇 개든 상관없다. 그리고 여기서 일관되게 적용된 규칙을 찾아 달라고 시킨다.

아래는 내가 지난달에 작업한 결과물이다.
여기서 일관되게 적용된 규칙을 찾아, 작업자가 보고 따라 할 수 있는 문장으로 정리해 줘.

- 규칙 하나에 한 줄
- 내가 왜 그렇게 했는지 짐작되면 한 문장으로 같이 적어 줘
- 근거가 두세 건뿐이라 확신이 낮은 것은 따로 표시해 줘

마지막 줄이 중요하다. 이걸 빼면 한두 건에서 본 것을 규칙처럼 적어 놓는 경우가 있다. 표시를 시켜 두면 그 항목만 보고 지울 수 있다.

그러면 자기도 말로 해 본 적 없는 기준이 문장으로 나온다. 틀린 것도 섞여 있기 마련인데, 틀린 걸 고치는 일이 백지에 쓰는 일보다는 빠르다.

한 번 더 시킬 것이 있다. 뽑힌 초안을 다시 주고, 이 문서만 보고 일하는 사람이 되어 보라고 시키는 것이다.

아래가 내가 만든 작업 매뉴얼이다.
이 문서만 보고 일하는 사람이 되어서, 판단이 막히는 지점을 질문으로 만들어 줘.

- 문서에 답이 없는 것만
- 실제로 자주 마주칠 것 같은 순서대로
- 열 개 안쪽으로

첫 주에 받을 질문을 미리 받아 보는 셈이라 빠진 자리가 그 자리에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작업하면서 말로 설명한 것을 화면 녹화로 남겨 두고 그걸 정리시켜도 된다. 글로 적는 건 귀찮아도 말로 하는 건 대개 어렵지 않다.

그래도 안 되지 않나

여기까지 얘기하면 대체로 두 가지가 돌아온다.

「만들어 놔도 안 지키면 그만 아닌가.」

안 지키는 것과 몰라서 다르게 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그런데 매뉴얼이 없으면 이 둘이 구분되지 않는다. 결과물이 다르게 왔을 때 사람을 의심할지 지시를 의심할지 알 수가 없다.

적어 둔 것이 있으면 갈린다. 문서에 있는데 다르게 했으면 그건 사람 쪽 문제이고, 문서에 없던 상황이었으면 내 쪽 문제다. 겪어 보면 뒤쪽이 훨씬 많다. 그리고 뒤쪽은 문서에 한 줄 붙이면 끝나는 일이라, 같은 일이 두 번 생기지는 않는 편이다.

「우리 일은 건마다 달라서 매뉴얼이 안 됩니다.」

정말 건마다 다르다면 그건 단순 반복 업무가 아니다. 이 글이 다루는 대상도 아니고, 원격으로 넘기기에도 아직 이른 일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그 말이 사실인지는 한 번 볼 만하다. 매번 다른 것은 대개 결과물이지 그 결과물을 만들 때 쓰는 판단이 아니다. 지난 열 건을 펼쳐 놓고 각각에서 무엇을 보고 정했는지 적어 보면, 서로 다른 열 개가 아니라 같은 기준 서넛으로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

줄지 않는다면 그때는 안 넘기는 게 맞다. 그것도 답이다.

사람이 아니라 문서에 붙는다

정해두지 않으면 사람이 나갈 때 판단 기준이 같이 사라지고, 적어두면 기준·예외 처리·확인 방법이 남아 다음 사람이 그 위에서 시작하는 것을 비교한 도식

단순 반복 업무는 원래 사람을 덜 타는 축에 속한다. 정해진 대로만 하면 누가 해도 같은 물건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해진 것이 문서에 없고 그 사람 머릿속에만 쌓이면, 덜 타도 되는 일인데 사람에 매이게 된다.

적어 두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이 빠지면 일하던 방식도 같이 빠진다. 다음 사람에게 처음부터 다시 알려 주고, 또 빠지면 또 처음부터다. 쓰는 동안 남는 게 없으니 매번 같은 값을 치른다.

적어 둔 쪽은 사람만 갈린다. 다음 사람은 첫날부터 그 문서를 보고 시작한다. 사람이 바뀌어 다시 붙이는 자리에서 이 차이가 제일 크게 보인다.

오래 쓰는 쪽을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 문서를 계속 고친다. 한 번 만들고 덮어 두는 게 아니라 새 상황이 나올 때마다 줄이 늘어난다. 그래서 사람이 바뀌어도 다음 사람이 금방 붙는다.

정리

매뉴얼은 일이 어려워서 만드는 게 아니다. 같은 기준이 반복해서 쓰이기 때문에 만든다. 그래서 단순 반복 업무일수록 값이 커진다.

같은 이유로 자세할수록 좋다. 적어 둔 만큼 막아 주고, 안 적은 자리는 그대로 천 장에 간다.

적는 게 막히면 이미 해 둔 결과물을 AI에 던져서 규칙을 뽑게 하고 거기서부터 고치면 된다. 자세히 쓰는 일이 예전만큼 비싸지 않다.

어긋난 기준은 조용히 반복된다. 한 장이 아니라 그 기준을 쓴 전부가 어긋나고, 되돌리는 데는 처음 하는 만큼이 다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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