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MI – 왜 블로그명이 neonomadj(네오 노마드 제이)인가?
난 블로그명에 nomad가 들어갈 정도로 nomad적 가치를 좋아한다. 군대에 있을 때 자크 아탈리가 말한 유목민(L’homme nomade)의 삶의 특징을 우연히 접하면서 “그래 내 인생 스타일은 이거다.”라는 생각을 했다.
자크 아탈리는 “17세기 중반 이후 인류 문명의 ‘세계화’가 진행됨에 따라 인류는 한 지역, 한 국가에 안주하는 정착민의 삶을 마감하고 새로운 유형의 유목민으로 진화해 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신유목민들의 삶의 형태는 공간적으로 구속받지 않지만, 여러 곳에 자산을 소유한다.
나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한국에 집 하나, 미국에 집 하나, 터키에 집 하나. 사업체는 가지면서 시간적, 공간적으로 구속받지 아니할 정도의 재력? 미국 주식, 한국 주식, 그 외 국가 주식을 투자하면서. 꿈도 야무지다. ㅎㅎ
자크 아탈리의 사회 진단이 국가보다는 다국적 기업의 이익과 영향력, 세계화를 중시하는 글로벌리스트들의 논리를 뒷받침해주는 개똥 철학이라는 것을 모 교수님의 유튜브 강의를 보고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이런 삶의 방향을 갖게 된 것도 결국 세뇌의 산물인건가?
좌우지간 ‘신 유목민(Neo nomad)’이라는 키워드는 20대 이후의 내 삶을 방향을 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내가 20대에 경험한 중국 및 유럽 국가들로의 여행은 심리적, 인지적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 대한 문화, 역사, 경제적 관심을 갖게 해주었다. 20대 후반에는 호주에서 약 10개월 간 일을 하면서 영어를 익히고, 이후에 사업 자체를 영어 교육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8여년간 필리핀을 거의 매달 왔다 갔다 했다.
호주에서는 아시아인 외노자의 삶을, 필리핀에서는 약 40여명의 외국인 직원을 관리하는 사장의 삶을 살았으니 당연히 ‘문화상대주의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대주의나 인종주의는 혐오하는 편이다.
몇 년 전부터는 네트워크와 온라인 서비스가 발전하면서 노트북 하나 들고 언제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업무 환경이 조성된 것은 디지털 노마드의 유행을 만들어냈다. 나 또한 이러한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에 박수를 쳤었다. 펜데믹 기간에는 이러한 업무 방식이 대유행처럼 번지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거부감이 크게 줄었다. 덕분에 지금도 재택 근무를 하고 있다.
펜데믹 시절에는 어쩌다 보니 유목민의 나라인 몽골에도 몇 년 간 체류하게 되면서 ‘척박함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몸소 경험했다.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결정권이 있다면 이주해야 할 국가도 잘 골라가야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몽골에서 사업하면서 안정적으로 정착하신 분들을 보면 매우 존경스럽다.
게다가 나는 결혼마저 외국인과 했으니 나도 별종이라면 별종이다.
이런 글로벌스러운(?) 경험을 지속적으로 하다 보니 심리적으로 국가 간의 경계는 희미해졌고, 적절한 자금만 있다면 전세계를 체류하면서 살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지금도 든다.
그러니 나 자신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키워드는 노마드(Nomad)일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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