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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없는 사회는 어려운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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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5

며칠 전 또 다른 유명 여자 아이돌 가수가 자살로 목숨을 포기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자살에 대한 주요 원인이 유명인에 대한 ‘악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지속되는 악플이나 개인사 등으로 생긴 우울증으로 몸과 마음이 모두 무너져 내렸기 때문에 그런게 아닌가 싶다. 

일반적인 사람들도 ‘악플’이 가져다주는 정신적인 충격과 스트레스는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갑질문화’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라다. 정신노동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타인이 자신에게 주는 모욕감과 압박감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다. 

필자도 예전에 하던 교육 서비스업에서 학부모들과 상담할 일이 많았다. 정말 세상에는 ‘진상’이 너무 많다. 난 그래도 교육 분야인지라 ‘선생님’ 소리를 들으면서 상담을 해줬었는데, 다른 통신업이나 금융업 쪽에 종사하는 콜센터 직원들의 고초가 어떨지 짐작이 갔다. ‘신상공격’은 아니지만 내가 하는 서비스 부문에 대해서 좋지 않은 피드백이 올라오면 누구의 잘못인지를 떠나서 그날 하루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물며 매일같이 신상공격을 당하는 연예인은 얼마나 힘들까? 누구는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물론 돈벌이에서야 내 걱정을 먼저 해야겠지만, 본질적으로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인 피해를 받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조국 사태를 통해서 우리 언론이 얼마나 썩었는지 다시 한번 여실히 드러났다. 그리고 악성댓글을 다는 키보드 워리어들도 특정 세력을 비호하기 위해서 기사를 쓰는 언론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은 자신의 재미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남의 정신을 짓밟는다. 남의 아픔을 통해서 기쁨을 느끼는 정신병자들이다.

한발 더 나아가 우리는 ‘자살률 세계 2위’라는 반갑지 않은 타이틀을 가진 대한민국에서 ‘자살’에 대한 심각성을 다시 한번 인식하고 사회 전체적으로 어떻게 개선을 시킬지 노력해야 한다. 비교적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연예인의 자살 원인이 ‘악플’로 인한 우울증이라면, 자살하는 일반인 대부분의 원인은 개인적인 질병이나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한 노인자살률이 매우 높다. 즉,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자살률 세계 1위는 ‘리투아니아’인데 리투아니아의 자살문제도 여러 측면에서 연구되고 있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는데, 유럽과 통합된 후에 나타난 경제문제 즉, 가파른 물가상승과 이에 따라가지 못하는 임금으로 인한 소득 불평등이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특히 사회 전반에 우울함이 자리잡아서 그런지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10대의 자살률이 가장 높다고 한다. 리투아니아 TV나 도시 거리에서 보이는 광고에는 ‘자살 예방’ 광고가 자주 등장하지만 본질적인 원인해소와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를 바꾸지 못한다면 개선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여러번 정권이 바뀌어도 서민들의 팍팍한 생활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대한민국처럼 말이다.

또한 유명인의 자살의 경우에는 ‘미화’되기가 쉽다. 미화된 자살은 특히 어린 10, 20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건 발생 후에 여론을 조성하는 이들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리투아니아에서는 상담치료나 자살에 대한 서로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이겨내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자살예방 프로그램’에 대해서 더 많은 예산을 책정하고 다양한 홍보채널을 통해서 적시에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연이어 이어진 유명인의 자살에 대해서 다른 유명인들이 앞다투어 소셜 미디어에 ‘개인 의견’을 내비치고 있다. 이중에서 허지웅씨가 인스타그램에 남긴 글이 공감되어 공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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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는데. 세번째 항암치료를 하고 나흘째 되는 날 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손이 부어서 물건을 집을 수 없고 손발 끝에선 더 이상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거울 속엔 다른 사람이 있었고 하루종일 구역질을 하다가 화장실로 가는 길은 너무 높고 가파랐다. 살기 위해 반드시 먹어야 한다는 알약 스물 여덟알을 억지로 삼키다 보면 웃음이 나왔다. 나는 이제 내가 정말 살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다. 오늘 밤은 제발 덜 아프기를 닥치는대로 아무에게나 빌며, 침대에 누우면 천장이 조금씩 내려앉았다. 나는 천장이 끝까지 내려와 내가 완전히 사라지는 상상을 했다. 그러면 기뻤다. 아픈 걸 참지 말고 그냥 입원을 할까.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병동에서는, 옆자리에서 사람이 죽어간다. 사람의 죽음에는 드라마가 없다. 더디고 부잡스럽고 무미건조하다. 가장 어둡고 깊었던 그 밤을 버티고 몇개월이 지났다. 놀랍게도 아프기 전보다 훨씬 건강하다. 얼마 전 그런 생각을 했다. 가장 힘들었던 그날 밤을 버티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나는 왜 가족에게, 친구들에게 옆에 있어달라고 말하지 못했나. 말했다면 그 밤이 그렇게까지 깊고 위태로웠을까. 나는 언제나 뭐든 혼자 힘으로 고아처럼 살아남아 버텼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왔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누구에게도 도와달라는 말을 할 수 없는 멍청이가 되고 말았다. 그런 인간은 도무지 아무 짝에도 쓸 데가 없는 것이다. 그런 인간은 오래 버틸 수 없다. 오래 버티지 못한다면, 삶으로 증명해내고 싶은 것이 있어도 증명해낼 수 없다. 나는 행복이 뭔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매대 위에 보기 좋게 진열해놓은 근사한 사진과 말잔치가 행복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안다. 아마 행복이라는 건 삶을 통해 스스로에게 증명해나가는 어떤 것일테다. 망했는데, 라고 생각하고 있을 오늘 밤의 아이들에게 도움을 청할 줄 아는 사람다운 사람의 모습으로 말해주고 싶다. 망하려면 아직 멀었다. #마지막밤이라고생각하고있을모든청년들에게바칩니다 #자살예방상담전화1393 ps. 저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아요. 필요 이상으로 건강합니다. 그러니까 저를 응원하지 말아주세요. 대신 주변에 한줌 디딜 곳을 찾지 못해 절망하고 있을 청년들을 돌봐주세요. 끝이 아니라고 전해주세요. 구하라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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